최고의 비 미국인 농구 선수 5명

20 8월, 2019
농구를 좋아한다면 이 글을 놓치지 말자! 오늘은 NBA 역사상 최고의 비 미국인 선수 다섯 명을 분석해보려고 한다.

NBA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 다섯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팬은 존슨, 조던, 제임스, 던컨 그리고 오닐이 드림팀을 이룰거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렇기에 최고의 비 미국인 선수를 분석하면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다.

역사상 최고의 비 미국인 농구 선수 5명

최고의 농구 선수, 토니 파커

첫 번째로 소개하는 선수는 NBA에서 꽤 강한 인상을 남긴 유명인이다. 윌리엄 앤서니 파커 주니어는 1982년 5월 17일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뛰고 있으며 프랑스 국가대표 농구팀의 주장이기도 하다.

유럽에 있는 그의 팬들은 흔히 그에게 “Oh la lá Parker!”라고 연호한다. 이러한 면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훌륭한 선수인지를 알 수 있다. 2007년에는 유럽 출신 선수로는 처음으로 NBA 챔피언 결정전의 MVP로 선정되었다. 게다가 2014년까지 네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가 유일하게 패한 파이널 시리즈는 2013년이었다. 그는 현재 구단 역사상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이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가대표팀으로 2013년 유로 바스켓 우승을 견인했다. 

그의 기록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듯이, 파커는 커리어 내내 경기당 평균 16.2득점, 2.8리바운드, 5.9어시스트 패스를 기록했다.

드라젠 페트로비치

드라젠 페트로비치는 자그레브의 시보나에서 선수로 활약하는 동안 ‘농구계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을 얻은 선수이다. 시보나 자그레브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이며,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빅 리그의 유럽팀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페트로비치는 1988/1989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잠시 선수 생활을 했다가 미국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에서 150만 달러를 주고 그를 영입했다.

그가 블레이저스에서 빛을 발하지는 못했지만, 브루클린 네츠에서는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모두 발휘했다. 그렇기에 다음과 같은 그의 기록을 보면 그가 최고의 농구 선수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경기당 15.4득점, 2.3리바운드, 2.4어시스트 패스를 기록했다.

최고의 비 미국인 농구 선수 5명

또한, 그는 국제 대회에서도 많은 승리를 거두었는데, 그중에는 1990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러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는 미국 팬과 유럽 팬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28세의 나이에 차 사고로 사망했으며 그의 사망 후 브루클린 네츠에서는 드라젠의 등 번호인 3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토니 쿠코치

쿠코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역사상 최고의 유럽 출신 농구 선수 중 한 명이다. 유럽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뒤 그는 미국으로 떠나 NBA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로 했다. NBA에서 그는 시카고 불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주로 윙맨으로 활약했지만, 필드 위에서 어떤 포지션도 맡을 수 있는 신체적 그리고 기술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의 다재다능한 능력은 조던과 함께 시카고 불스의 스타로 등극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여기에서 세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게다가 그는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에서 첫 번째 국제 대회 메달을 획득하고 나머지 7개의 메달은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에서 획득했다. 이러한 국제 메달 중에는 1990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획득한 금메달이 있다.

더크 노브츠키

의심할 여지 없이 역사상 최고의 유럽 출신 선수 중 한 명으로는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활약한 만 41세의 더크 노비츠키가 있다. 독일의 DJK 뷔르츠부르크에서 4시즌 동안 활약한 뒤 자신의 공부를 마치고 군 복무를 했다. 그리고 21세의 나이에 드래프트 9순위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었고 당일 댈러스로 트레이드가 되었다.

최고의 비 미국인 농구 선수 5명

댈러스에서 그가 세운 주된 업적으로는 1번의 NBA 정규시즌 우승과 2010-2011 시즌의 파이널 MVP가 있다.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은 성적을 냈다.

  • 13차례 올스타 출전
  • All-NBA First Team으로 4회(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선정되었다.
  • All-NBA Second Team으로 5회(2002년, 2003년, 2008년, 2010년, 2011년) 선정되었다.
  • All-NBA Third Team으로 3회(2001년, 2004년, 2012년) 선정되었다.

또한 2006년도에 트리플 올스타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유럽 출신 선수이기도 하다.

국제 경력 동안 그는 독일 대표팀을 이끌었다. 2002년 인디애나폴리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고 2005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두 경우 모두 그는 MVP를 차지했다.

아비다스 사보니스

마지막으로 역대 최고의 유럽 출신 농구 선수 중 한 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BC 잘기리스, CB 바야돌리드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성공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1995년 31세의 나이에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와 계약을 했다. 같은 시즌 그는 신인상 투표 2위를 기록했고 최고의 식스맨이었다.

그의 경기 스타일은 NBA에서 매우 효과적이었고 성공을 이뤘다. 하지만 많은 팬은 그가 조금 더 어린 나이에 NBA에 입성했다면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루어 냈을지 궁금해하곤 한다. 

국제 대회에서 사보니스는 소비에트 연방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그의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로는 1982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의 금메달, 1986년도에 은메달 수상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이 있다.